멸종 위기가 되는 것은 비단 동식물만의 일이 아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의 이름 또한 그러하다. 나의 두 아이들을 비롯해 요즘 도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대부분 고향이란 개념이 거의 없고 출생지로서 그저 무슨무슨 아파트이거나 무슨무슨 산부인과나 대학병원 등으로 공식적인 기록으로서 존재하지만 중년의 나에겐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있다.
1970년대 중반에 출생한 나는 고향집 안채 작은 방에서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닌 이웃에 사시는 친척 할머니의 도움으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은 경기도 용인에 본관을 둔 용인이씨 집성촌이다. 조선 태종 청백리공 이백지의 아버지로 조선 초기 유후란 벼슬을 지낸 이사위인 유후공이 살던 마을을 뜻하는 '유후실'에서 유래하여 세월을 거듭해 '유실'로 자연스레 불리게 되었다.
700년 불러온 마을 이름 '유실'
유후공의 직계인 나 또한 유실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일가 친척 몇몇 분들이 그곳에서 살고 계시니 고려 말인 15세기부터 21세기까지 만 700년 가까이 유실에서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셈이다.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 중 이십 대 청년기를 혹독하게 보내신 나의 할아버지는 세 번의 모진 강제징용 후에도, 일가족이 피난을 떠났던 후에도 다시 고향땅 유실로 돌아와 마을을 재건하며 마을 이름을 부르고 마을을 지키며 빈자로도, 부자로도 살아오셨다.
일제 시대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운2리로 통하게 되었지만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척들과 주민들은 그저 원래부터의 그 이름 '유실'로 불렀다. 어디 가서 말하거나 적을 일이 있을 때에만 유운2리라는 행정구역상 명칭을 편의상 사용했다. 노년의 아버지를 따라 마을 길을 쭉 걷다 보면 곳곳마다 즐겨 부르시던 이름이 있다. 밤무탱이(바위 모퉁이), 사기골(도자기 굽는 가마터가 있던 골짜기), 샘뜰(샘물이 나오는 뜰), 열무둥치(연못이 있는 둥치) 등이 그러하다.
고향마을의 흔적들을 되새기다
마을의 옛 이름과 마을 구석구석 장소마다의 귀여운 옛 이름들은 그곳에 살면서 그 이름들을 부르시던 어른들이 돌아가시면서 차츰 덜 부르게 되었고 공식적인 기록은 점차 찾기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도로명 새 주소에선 전혀 옛 마을 이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창작해낸 것인지 그곳이 고향인 나에겐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노년의 아버지가 일러주시는 내용을 메모하고, 온라인 지도의 각 위치마다 옛 이름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실제 공간에서는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언젠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고향 마을 구석 구석마다의 이름들이 온라인에서나마 사라지지 않고 스쳐 지나가듯이라도 보이게끔 말이다.
'사람과 세상 > 일상 그리고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년 뒤 나의 노후를 고민하니 한국 노인 여성의 '보편적 가난'이 보인다 (3) | 2023.09.10 |
---|---|
나의 살던 고향은... 나의 고향 마을 '유실'에 관한 추억과 전해 들은 이야기 (0) | 2023.02.05 |
댓글